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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타 포르테에서 선보인 한글로 디자인한 옷

shiwoo jang 2006. 4. 24. 16:38

파리 패션계서 한글 디자인 옷 인기

디자이너 이상봉씨,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 선보인 뒤 주문 이어져

▲ 지난 2월 26일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서 선보인 한글을 디자인에 사용한 이상봉씨의 작품.
지난 2월 26일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Paris Pret-a-porter Collection)’이 막을 올린 프랑스 파리의 서클 리퍼블리칸.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열린 패션쇼엔 어딘가 낯익은 데가 있었다. 이날 모델들이 선보인 51벌의 옷에 손으로 흘겨 쓴 듯한 한글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달빛그림자’(L’ombre Lunaire)라는 테마의 이날 쇼에서 선보인, 상·하의 곳곳에 한글을 새겨 넣은 옷은 한국 정상의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의 작품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Liesangbong Paris’란 브랜드로 활동한다. “외국에서는 한국에 한글이란 고유문자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라요. 중국과 말만 다르게 쓰고 같은 문자를 사용하는 줄 알죠. 우리 스스로 한글의 가치를 모르고 이슈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한글은 우리 문화인 동시에 상품성 또한 갖췄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 4대 패션행사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의 ‘프레타 포르테(Pret-a-porter·기성복)’를 이끄는 두 가지 축은, 매해 각각 두 차례씩 열리는 전시회 성격의 살롱(Salon)과 패션쇼인 컬렉션(Collection)이다. 1000여개의 브랜드가 참여하는 살롱은 일정한 자격요건만 갖추면 출품이 가능한 데 비해, 1주일 동안 열리는 컬렉션엔 그간의 활동 성과를 기준으로 ‘파리의상조합’이 선정한 소수의 디자이너만 참가해 하루 10~12명 정도만 패션쇼를 주최할 수 있다.

루이 뷔통(Louis Vuitton), 샤넬(Chanel) 등과 같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의 작품이 이곳에서 공개되고 패션 관계자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영화, 광고, IT 관계자까지 몰려들기 때문에 디자이너와 패션 모델에게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은 꿈의 무대일 수밖에 없다. IMF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제 살길은 해외시장이라고 생각하고 파리로 진출했다”는 이씨는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올해로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 5년째 출품하고 있다. 이씨는 파리에 진출하기 전 한 번도 외국에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순수 국내파다.

일반인의 눈엔 패션쇼장의 화려한 무대가 프레타 포르테의 전부인 양 보이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선 무대에서 내려온 순간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세계에서 몰려온 바이어들은 패션쇼가 끝난 후 자신이 점 찍어뒀던 디자이너의 쇼룸(Show Room·현장에서 디자이너의 옷을 판매해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제품 주문을 한다. 컬렉션의 경우 보통 10분 남짓한 쇼를 한 번 하는 데 드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2억~3억원 정도 되기 때문에 바이어로부터 주문을 끌어내지 못하면 아무리 언론이나 업계 관계자의 평이 좋아도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프레타 포르테를 주최하는 ‘파리의상조합협회’ 회장 디디에 그랑박(Didier Grumbach)은 “팔리지 않는 옷은 죽은 옷”이라고 말했다. 패션은 예술이기 이전에 옷을 파는 산업인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 한글을 새겨 넣은 이씨의 이번 시도가 의미를 갖는 것은 단순히 현지 언론의 주목을 끈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바이어들의 실질적인 관심과 구매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이상봉 파리스’의 정우식 해외사업팀장은 “작년에 비해 주문이 2배 정도 늘었고 쇼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됐는데도 주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이 비즈니스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씨가 한글을 자신의 작품에 새겨 넣기로 한 것은 단순한 관심끌기나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다. 한글을 통해 현지의 호기심을 유도하고 제품 판매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디자인할 때) 직접 입을 수 있느냐 하는 생활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돼요. 한글이 상품성을 갖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존 기성복 디자인에 한글을 접목하면 입는 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거라고 봤죠.”

이씨가 자신이 디자인한 옷에 처음 한글을 새겨 넣기로 마음 먹은 것은 작년 12월 초. 때마침 한·불 수교 120주년 행사 준비와 관련, 한국을 찾았던 그의 프랑스인 친구가 던진 한마디는 그의 결심을 확고하게 해줬다. 그 친구는 “내가 느끼기에 한국 최고의 문화유산은 한글이다. 인사동, 경복궁 여기저기를 다 다녀봤지만 그렇다. 동양문화는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지만 한글은 매우 독창적”이라고 말했다.

▲ 디자이너 이상봉씨
한글을 디자인에 적용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어떤 글씨체를 사용하느냐였다. 이씨는 컴퓨터 필체처럼 정형화된 것보다 사람이 직접 쓴 살아 있는 글씨체를 사용하기로 했다. “요즘 자필로 편지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같은 내용이더라도 이메일에 사용되는 정형화된 필체는 편지가 전해주는 감성적인 부분까지는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편지에 적힌 사람의 필체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연말에 있던 한 파티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소리꾼 장사익씨와 화가 임옥상씨를 만났다. 두 사람의 글씨체를 사용해도 괜찮겠느냐는 이씨의 제안을 이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짐을 받은 지 채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씨의 작업실 우체함에 장씨와 임씨에게서 온 장문의 편지가 10통 정도 도착했다. “장사익씨 필체는 물이 흐르듯 유려한 느낌을 줘요. 반면에 임옥상씨 글씨엔 힘이 넘치죠.”

이씨가 우리 문화를 자신의 작품에 접목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파리 진출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2004년 우리 전통문화를 상품화시키기로 결심하고 ‘창(唱)’을 아이디어로 한 작품을 준비했다. 하지만 파리로 떠나기 한 달 전, 함께 무대에 서기로 했던 명창 안숙선씨가 병으로 입원했다.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찰나, 기분전환을 위해 광장벼룩시장에 들른 이씨는 일전에 안면을 익혔던 무속인 이혜경씨를 우연히 만났다. “순간 이거다 싶어서 함께 파리로 가자고 말했죠.”

애초 ‘창’에 맞췄던 패션쇼 컨셉트를 무속(巫俗), 특히 굿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해야 했다. 굿판에서 무당이 입는 새빨간 원색의 옷, 형형색색으로 치장된 노리개, 모자 등에서 영감을 얻어 여기에 사용되는 색상을 인용해 도발적이면서도 섹시한 미(美)를 살려냈다. 또 노란 트렌치코트엔 허리춤을 빨간색 한복 고름으로 조여 포인트를 주고, 양쪽에 노리개를 본뜬 화려한 색상의 주머니를 달았다.

이혜경씨의 굿으로 시작된 패션쇼는 현지에서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프레타 포르테를 주관하는 파리의상조합협회 회장이 쇼가 끝난 후 무대 뒤로 찾아와 10분 동안 기다려 이씨를 만나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반응이 그대로 상업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문화는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먼저 관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죠. 새로운 시도가 그들의 눈길을 끈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선보인 옷은 외국인이 소화하기엔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이씨는 이번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앞으로 한글을 디자인에 이용하는 대대적인 실험을 해나갈 예정이다. 올 가을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고급 옷 외에 중저가의 브랜드를 새로 만들어 한글을 새겨 넣은 넥타이, 티셔츠, 스카프 등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입을 수 없으면 세계화할 수 없습니다. 전통문화는 전통문화대로 계승, 발전돼야죠. 하지만 전통과 산업은 분명히 다릅니다. 외국인이 우리 문화를 입게 만들려면 전통을 과감히 깨뜨리고 해체시켜야 돼요. 요즘 퓨전이란 말을 수도 없이 쓰지만, 퓨전 자체도 결국 깨뜨리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재곤 주간조선 기자 truman@chosun.com
 
 
- 한글, 조형미가 돋보이는 글인 것 사실이지요
이응로화백인가요?
글자를 그림으로 조형화 하신 분, 아트샵에 가보면
그 분의 그림을 디자인한 타이라던가 스카프가 더러 있던데요
저도 작은 스카프를 가지고 있어요. 가을색이라
가을에 코디해서 매면 멋스러워요. 위의 디자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기스 장사익씨와 임옥상 화백의 서체라니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멋드러진 패션과 디자인으로 우리 한글이 더 사랑받는 날이
곧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