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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을 걸으며- 강원일보 오솔길

shiwoo jang 2010. 5. 10. 09:50

 

 

     

[오솔길]제주올레길을 걸으며

 장시우 시인·자유기고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 다리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했다. 오래 걷다보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제주올레를 걸었다. 사흘 동안 70㎞를 야무지게 걸었다. 제주올레는 섬이라는 특성상 대부분 해안을 끼고 걷는 길이 많고 이국적인 식물이 많아 풍광이 독특했고 재미있는 길이 많다. 하루 종일 걷다보면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정신은 점점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올레에서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이 반복됐다. 공항에서 만났던 이들을 중간 지점에서 만나고 걷다보면 보폭의 차이나 체력의 차이로 멀어졌다가 어느 식당에서 또 마주치기도 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너그러웠다. 그래서 낯선 이의 친절과 배려를 체험하게 됐다. 초행인 사람에게 올레는 예측불허의 길이다. 그래서 올레길에선 화살표나 리본, 간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어쩌다 이 안내자를 놓치면 다시 표시가 있는 마지막 지점으로 되돌아와 걸어야 한다. 그래서 올레에선 정해진 규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올레에서 나를 만났고 신뢰를 배웠으며 타인의 친절과 배려를 체험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그 결정이나 선택을 일단 접어두고 올레길을 나서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굳이 올레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이가 심각하게 틀어진 가까운 이가 있다면 눈을 딱 감고 손잡고 나서자.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살펴보고 작은 오솔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그간의 고민들이나 불화를 편안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걷기라는 단순한 행동을 하면 생각은 깊어진다. 그래서 뭔가 생각할 일이 있을 때 나는 무작정 걷는다. 걷다가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 실마리를 얻거나 답을 구하는 일이 많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상쾌해진다. 나의 경우 올레길을 걸으면서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히던 일들이 말끔히 정리가 됐다. 그런데 왜 그렇게 멀리 가야 했을까? 나는 갑자기 강원도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길들이 아깝고 안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