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길에서 만난 사람들

[장시우의 예술家 산책] 6. 설치미술가 정지연 작가

shiwoo jang 2022. 6. 24. 20:41

버려진 것에서 생명 얻는 작품
다시 허무는 일마저 자연을 닮다
가슴 뛰게 하는 녹슨 것들로 구현하는 상상
스테인리스·파이프·나사·나무
녹슬고 버려진 재료로 설치 작품
상상하던 작품 재현됐을 때 쾌감 커
자연과 교감하며 아름다움 전달
"공간空間 으로 관객과 교감했으면"

▲ 정지연 작 '생명의 빛'

원주한지문화제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람들 이목을 집중시켰던 작품이 있다. 한지테마파크 야외에 설치되었던 설치미술가인 정지연 작가의 작품 ‘2022 생명의 나무’, ‘종이의 숲 Season 3’, ‘2022 생명의 빛’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표정이 더 풍부해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설치미술가 정지연 작가의 작업장을 찾았다. 그는 주로 스테인리스, 파이프, 나무 등을 소재로 작업하는데 웬만한 남성도 힘들어 할 작업 과정을 거쳐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답게 작업장에는 그의 손을 거쳤거나 손길을 기다리는 용접 장비며 공구, 체인, 나사, 나뭇가지 등 다양한 재료들이 쌓여있었다.

“생명의 나무는 두물머리에서 아치형으로 작업했던 작품인데 나무는 벌목 현장에서 저렴하게 구매하거나 지나다가 주운 것들이고 스테인리스도 새것들이 필요한 때 외에는 폐기물 위주로 철거 현장이나 고물상에서 사 와요. 저는 H빔이나 철근 이런 걸 보거나 볼트 큰 나사, 녹슨 물건을 봤을 때 가슴이 뛰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 정지연 작 '종이의 숲'

그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결혼했고 서른에 다시 조형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후에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면서 조각 작업을 하다가 설치로 넘어왔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7년 중앙대 갤러리에서 설치미술 작업을 처음 해보았는데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조형 디자인 공부하면서 가구나 조각, 도자기, 섬유를 두루 배웠는데 그의 작업을 보면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들의 결정체 같다. 그는 작업 스타일이 즉흥적인데 하고 싶은 작업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든다. 상상하던 작품을 실제 설치했을 때 상상했던 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완전하게 일치했을 때 그 쾌감이 크다고 한다. 작업에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때마다 배우는데 용접은 학교에서 금속조각 할 때 배우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익혔다.

작품에 맞는 효과를 원하다 보니 영상과 프로젝션 맵핑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설치와 미디어로 확장되었다. 그의 작품은 설치 일정이 다른 사람보다 길다. 설치하는 데만 2주 이상 소요되고 미디어 작업까지 더해지면 한 달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그렇게 힘들게 설치한 작품이 5일간 전시된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작가는 어떤 마음일까? 시간도 힘도 더 들지만 설치하면서 오는 설렘도 있고 설치 후의 만족도에 따라 기분이 다르다고, 스스로 만족한 작품을 철거할 때는 아쉽지만 기록으로 남고 앞으로 작업할 때 밑바탕이 되고 늘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마음을 비우게 된다고 한다.

▲ 정지연 작 '빨간증식'

“2017년부터 작업한 생명의 나무 작업이 내 대표작이라 생각해요. 그 작업할 때 심리적으로 힘들었고 건강도 좋지 않았어요. 전국에 다니면서 주운 많은 나뭇가지로 작업했는데 버려진 나무들이 저 같았어요. 그 나무가 내 상황과 기억의 변주 같았고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생명이라는 스펙트럼을 넓게 주었더니 자연미술과 자연에 관한 관심이 끊임없이 생겼어요. 생명의 나무 작업하면서 햇살, 공기, 풀이 그렇게 좋았어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생명의 나무 작업 후에 체감했어요. 바람이 불거나 햇빛, 안개가 있을 때, 특히 비 올 때 작품의 움직임이 좋은데 연출한 건 아닌데 마치 연출한 것처럼 보여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기도 해요.”

설치작품은 철거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나무의 경우 불태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쟁여두거나 천장에 매달아 두었는데 이 나무들은 한겨울에 눈이 쌓인 상태 얼어붙은 상황에서 캐다시피 가져와서 햇빛에 말리고 칠한 건데 날이 풀리면서 송충이가 나오고 버섯이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목격하기도 했다. 다루기도 힘든 소재인 스테인리스는 불편할 수도 있고 인공적인 느낌도 강하지만 이 또한 자연에서 온 소재라 그마저 외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재료로 쓴다고 한다. 거친 재료를 다뤄야 하는 탓에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사는 등 힘든 과정이 많지만 작품을 구현하려면 그 과정이 바탕에 되는 거고 그 작업을 외부에 맡길 수 없으니 직접 해야 한다.

▲ 정지연 작가

그가 좋아하는 제임스 터렐 작품처럼 언젠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시점이 오면 그와 관객도 그렇게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느낌을 자연에서 받는데 자연 그대로가 작품인데 뭘 덧대려고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는 자연과 교감하며 마음이 가는 데로 작업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욕심 없이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너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교감할 수 있는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올해 원주한지문화제 전시를 마쳤고 작년에 G20 전시주관기관인 한지문화원과 했던 로마 전시가 반응이 좋아서 영국의 한국문화원에서 연장 전시하고 워싱턴 한지문화원과 함께 한국문화원에 전시 초대되어 참여할 예정이다. 그리고 원주문화창의도시센터의 진달래관 개관프로젝트도 맡아 준비 중이다. 나무도 꽃이 필 때가 돼야 피고 모든 건 때가 있다고 말하는 그가 어떤 상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다음 작업이 기대되는 건 그가 자연과 교감하며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생명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시인·문화기획자

▲ 정지연 작가 작업실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