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길에서 만난 사람들

[장시우의 예술家 산책] 2.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김용석

shiwoo jang 2022. 3. 1. 09:59

그림에 담긴 몸, 몸에 담긴 언어…수만 번 터치로 여는 말문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레핀 아카데미 출신 화가 작품 팽팽한 현 같은 유학 이끌어
아트팩토리 후 거쳐 개인 독립
손짓·손에 담긴 표정 그리다 눈으로, 몸으로 영역 확장 다음 작업 ‘자연’ 옮겨갈 계획
“동작마다 다르게 읽히는 몸은 언어가 된다는 생각 이게 내 언어라는 느낌에 몸에 집중하게 돼”

 김용석 작 ‘The eye’ 

■ 수만 번의 터치가 그리는 아름다움

김용석 작가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 옛 원주역 근처 공구상이 늘어선 도로변에서 두리번거리자니 빈 상가가 눈에 많이 띈다. 먼지 쌓인 기물들과 문 앞에 청구서, 광고지가 쌓여있는 풍경은 굳이 묻지 않아도 드러나는 요즘의 안부다. 화가의 작업실은 공구상이 이어진 도로변 상가 2층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주변 풍경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늘 그를 설레게 한다는 형형색색의 물감과 그림들, 작업 중인 이젤이 이곳이 예술가의 공간임을 말해준다.

김용석 작가가 노림스튜디오와 아트팩토리 후를 거쳐 지금의 작업실로 독립해 나오기까지 원주에서 보낸 세월이 10년이 흘렀으니 그와 알게 된 지도 그쯤인데 오가며 마주치면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지만 그 오랜 덤덤함이 주는 적당한 거리감이 편안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김용석 작가는 하이퍼리얼리즘,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의 작품은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하고 섬세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사진에는 없는 수만 번의 터치에서 오는 질감과 선이 있어 사진과는 결이 다르다.

김용석 작 ‘Flower’

■ 끊어질 듯 팽팽한 바이올린 현 같았던 레핀 아카데미의 시간

그는 세계 최고의 인물화 학교로 유명한 러시아 국립 미술대학인 레핀 아카데미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한 레핀 아카데미 출신 화가들의 초상화 전시에서 받은 충격으로 그에게 레핀 아카데미가 각인되었고 중앙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2006년, 그는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시절은 그가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였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교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일요일은 야외로 나가 풍경화, 크로키를 그려야 하는 등 물밀듯 밀려드는 과제에 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해에 한 번뿐인 방학에도 과제에 시달리느라 가까운 곳으로 여행 갈 여유도 없이 팽팽한 바이올린 현 같은 긴장감으로 살았다.

 김용석 작 ‘화가를 품은 곳’

실력파들이고 그림을 즐기는 학생들마저 지쳐 떨어질 정도로 힘들었던 유학 시절이었지만 나름의 성취도 있었다. 레핀 아카데미는 지하 수장고에 문화재급 작품과 함께 매년 뛰어난 학생들의 작품을 선정하여 소장하는데 그의 작품도 포함된 것이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을 정도로 치열했던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평택 대추리로 돌아왔으나 집 근처에 미군 부대가 이전하면서 헬기며 사격으로 밤낮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은 붓을 들 수 없게 했다. 2011년 후배의 소개로 노림스튜디오에 합류하면서 원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4명의 작가가 함께 만든 아트팩토리 후를 거쳐 개인 작업실로 독립해 나왔다.

 김용석 작가의 화실

■ 몸이 말하는 나의 언어 그리고 확장

그는 처음에 손을 그렸다. 그림 문자나 언어를 제외한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이 수화였고 보디랭귀지, 손짓, 손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어서였다. 이후에 눈빛으로 그의 관심이 옮겨갔다. 소통 느낌, 감정을 더 직접적으로 만들어내는 건 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림은 피의 흐름, 붉게 상기된 것, 눈물 같은 눈 주변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관람객만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람객을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그런데 그 작품이 관람객을 거부한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있었다.

김용석작가의 도록

그는 요즘 몸을 그린다. 러시아에서는 예술대 학생증이 있으면 모든 전시나 공연이 무료여서 공연을 자주 보러 가곤 했는데, 배우들을 관찰하다 보니 잘 숙련된 제스처나 무빙에서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그런 몸짓도 의사소통의 방법이라 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스케치하다 보니 몸이 모음으로 팔목 손목은 자음으로 느껴지는 거예요. 몸에다 어떤 자음을 붙이냐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르고 또 다르게 읽혀 문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동작인데 팔만 구부려도 다른 느낌 언어의 기능으로 확장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몸이 내가 만든 언어가 되는 느낌, 내가 만드는 훈민정음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포즈를 만들 때 글씨와 연관해서 생각하게 돼요. 그림은 사각 안에 들어가는 컴포지션인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발음도 달라지고 그림에 색이 들어가니 이게 내 언어라는 느낌이 들어 몸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그는 몸을 그리면서 사람을 관찰하게 되는데 사람마다 다양한 질감을 느껴져 아직은 몸을 그리는 작업이 재미있지만, 몸 다음엔 나무를 그리게 될 것 같다며 “언젠가 치악산에 갔는데 나무들이 사람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사람이 서 있는 느낌 누드 다음엔 풍경화에서 뻔한 풍경이 아닌 사람의 의미가 되는 세월을 등지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오랜 시간 움직여 가며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았어요. 아마 다음 작업은 몸에서 자연의 몸으로 확장되어 갈 것 같아요. 아직은 막연하게 둥둥 떠다니는 이미지예요” 그렇게 그의 그림은 더 확장되고 더 깊어질 것이다.

김용석 작가의 작업 모습

김용석 작가는 작년 11월에 개인전을 끝내고 지금은 시어터 필름 작업하거나 아트팩토리 후 작가들의 사진 작업을 돕기도 하면서 작품 구상도 하는 다소 느긋하고 평온한 상태다. 올해는 5월과 9월 두 차례 서울에서 개인전이 있다니 햇살 환한 봄이나 가을 어느 날 그에게 시간을 내준다면 서늘하지만 따뜻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테니 화가의 시간을, 화가의 시선을 봄날처럼 느긋하게 기다려 보자. 시인·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