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
서윤후
저 고개 숙인 자의 표정을 알고 싶다
코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찡그림을 발명했는지
그 찡그림을 펼치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
마른 헝겊으로 안경을 닦을 때
초조하게 뒤돌아 볼 때
앞은 잠시 앗아갈 것이 많아지는 세계
새장은 모란 앵무를 찾으러 떠났다*
흔들의자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그림자만 남겨지는 실내악
예열된 오븐 밑을 기어가는 벌레를 볼 때
밤새 얼마나 번성하게 될 것인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시작하거나
이젠 얼마 없는 이야기
고개르 들면 모자라게 된다
뜨개질처럼 멀고 먼 생활의 과로사를 시작하게 된다
어딘가 다친 모과들을 닮아
향기를 먼저 내밀게 된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게 된다
고개 숙인 자가 거느리는 밤 속에서
감긴 눈을 일으킬 슬픔이 필요하므로
어제와 내일을 교환하는 오늘을 살게 되고
고개 숙인 자리로 벌레들이
실눈을 그으며 떠났다가 뒤집혀 죽는 일로 돌아온다
찡그린 자의 얼굴을 베껴 간 벌레의 배가
이 밤에 가장 환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분장을 변형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서윤후. 문학동네,2021
-어떤 찡그림을 발명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잘 살피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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