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時雨의 시읽기

괴도- 서윤후

shiwoo jang 2021. 9. 7. 19:48

괴도

 

                  서윤후

 

저 고개 숙인 자의 표정을 알고 싶다

코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찡그림을 발명했는지

 

그 찡그림을 펼치기 위해서 누군가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

마른 헝겊으로 안경을 닦을 때

초조하게 뒤돌아 볼 때

앞은 잠시 앗아갈 것이 많아지는 세계

 

새장은 모란 앵무를 찾으러 떠났다*

흔들의자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그림자만 남겨지는 실내악

 

예열된 오븐 밑을 기어가는 벌레를 볼 때

밤새 얼마나 번성하게 될 것인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시작하거나

이젠 얼마 없는 이야기

 

고개르 들면 모자라게 된다

뜨개질처럼 멀고 먼 생활의 과로사를 시작하게 된다

어딘가 다친 모과들을 닮아

향기를 먼저 내밀게 된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게 된다

 

고개 숙인 자가 거느리는 밤 속에서

감긴 눈을 일으킬 슬픔이 필요하므로

어제와 내일을 교환하는 오늘을 살게 되고

 

고개 숙인 자리로 벌레들이

실눈을 그으며 떠났다가 뒤집혀 죽는 일로 돌아온다

 

찡그린 자의 얼굴을 베껴 간 벌레의 배가

이 밤에 가장 환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분장을 변형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서윤후. 문학동네,2021

 

-어떤 찡그림을 발명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잘 살피지 않는 사람들.

 

                      

'poem > 時雨의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문장_ 오은  (0) 2022.03.23
배후에 대하여_ 이상국  (0) 2021.07.20
혼자의 넓이_이문재  (0) 2021.07.17
맛- 김소연  (0) 2021.04.22
등이 열린 사람- 안주철  (0) 202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