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good/세상읽기

행복한 인문학

shiwoo jang 2010. 11. 2. 20:31

노숙인 김씨, 대학 가다 ―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의 탄생
서울역 앞에서 지내던 '김씨'는 어느 날 인문학 공부를 해보겠느냐는 희한한 제안을 받았다. 별 생각 없이 참여한 김씨에게 뜻밖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장 그날부터 지난 1년 반 동안 기대어온 거리 무료 급식을 끊고, 지원센터에서 소개한 자활 근로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하루 몇 천 원하는 쪽방을 얻어 스스로 밥을 지어 먹고 밤에는 불을 밝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한 이들에게는 세상과 타자와 올바로 소통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소외 계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만든 얼 쇼리스는 한국에 소개돼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6)에서 해답을 제시했다. 타자와 소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자존감을 확보하는 것이며, 인문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인문학을 통해 자존과 정치적 삶을 회복해 '위험한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궁극적 목적이라고 말한다.
2005년 9월, 노원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은 소외 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다. 김씨도 이 강좌의 수강생이다. 김씨처럼 뜻밖의 변화를 겪은 이들이 늘면서 비슷한 강좌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교도소 수용자, 자활 근로자, 노숙인 등 참여하는 사람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참여해 만들어낸 새로운 인문학을 가리켜 이제 '시민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를 뚫고 새로 태어난 소외 계층을 위한 인문학, 그 '행복한 인문학'이 바로 한국형 클레멘트코스인 것이다.

지식 나눔을 실천하는 행복한 인문학, 가르치고 배운 이들의 가슴 벅찬 고백록
제2의 IMF라고 할 만큼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은 지금, 재정 지원이나 직업 훈련이 아니라 인문학을 가르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의 경제적 무능함 때문에 가정불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인문학 강좌를 듣게 된 어느 수강생은, 자기 내면의 알 수 없는 변화 때문에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됐고 덕분에 가정의 평화도 되찾았다. 강사로 참여한 소설가 임철우는 관념으로 꾸민 멋스런 글 대신 구체적 삶의 경험을 기록한 수강생들의 글을 통해 무척 행복했으며, 훨씬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또한 강좌에 참여한 여러 분야의 다른 강사들도 가난한 시민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큰 빚을 지게 됐다고 이구동성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 책 『행복한 인문학』은 인문학 과정 참여자들의 가슴 벅찬 고백록이다. 책 곳곳에 가득한 강사와 수강자들의 고백은, 돈을 버는 법이 아니라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역설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강의실을 벗어난 전통적 인문학이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삶의 위기를 이겨낼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자신을 성찰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부(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식 나눔을 실천하는 행복한 인문학은, '가난한 이들과 세상 사이에 올바른 대화와 소통의 통로를 찾아내기'에 다름 아니다. 그 과정에서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문학 본래의 가치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 역시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고, 타자와 자신의 올바른 관계 맺기를 배우"기 때문이다.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 세상과 소통하는 시민인문학
얼마 전 서울시는 「휴먼 서울, 시민인문학 강좌」를 개설했다. 사업을 위탁받은 경희대학교는 '실천인문학센터'를 만들어 여러 자활기관과 노숙인 쉼터에서 인문학 강좌 12개 코스를 위탁·운영하기 시작했다. ' 제주희망대학', '관악인문대학',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로 이어진 소외 계층을 위한 인문학 강좌는 현재 30여 개를 넘어서고 있다.

『행복한 인문학 ―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은 인문학의 위기를 돌파할 한국형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의 결산이다. 교도소 수용자, 자활 근로자, 노숙인 대상으로 한 강좌에 참여한 강사들의 면면은 전통적 인문학을 가리키는 문사철(文史哲)을 떠올리게 한다. 책은 1부 행복한 삶 쓰기(文), 2부 세상살이 인문학과 삶의 철학(哲), 3부 역사와 소통하는 인문학(史)으로 갈무리돼 있으며, 부록으로 시인 도종환의 「 시에서 배우는 역설의 진리」와 함께 수강생 글모음이 실려 있다. 부록으로 실린, 맞춤법도 틀리고 논리도 엉성한 이 글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첫걸음인 셈이다.

희망의 인문학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행복을 누렸다. 그러나 세상과 소통하며 지식을 나누는 인문학이 가난?? 시민들의 정신을 바꿀 수는 있어도, 그것이 현실적 고통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뼈아픈 절망 또한 잊지 않았다. 다만 그 현실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세상과 소통하는 시민인문학이 지향하는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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