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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514인 시국선언 "민주주의 붕괴 직전"

shiwoo jang 2009. 6. 10. 22:35

한국작가회의 514인 시국선언 "민주주의 붕괴 직전"

 

한국작가회의 시국선언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고향마을로 돌아가 평범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마저 허용하지 않고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가는 비열한 정치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있었던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비극이며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승리한 권력이 물러난 권력을 향해 집요하게 전개해 온 보복정치, 지난 정권에서 이루어진 성과의 흔적들을 모조리 부정하는 일에만 시간과 국력을 낭비하는 정치,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의 장을 포함해 대학 총장에 이르기까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려는 옹졸하고 졸렬한 정치, 검찰 권력과 보수언론을 동원하여 전직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진보세력을 부패세력으로 몰고 가기 위해 균형감각을 잃어가며 광분해온 정치가 어떤 국가적 비극을 초래하는지 우리 국민들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지켜보았다.

오만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눈물의 의미를 아직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축소하거나 애써 외면하려고만 하고 있다. 국정의 발목을 잡는 돌발변수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남북간의 국지적인 군사적 충돌을 포함한 새로운 이슈의 창출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꼼수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을 바로 그 점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수를 쓰지 않는 우직한 전직대통령과 꼼수를 부리는 일에 익숙한 권력, 부패한 세력 그 자체인 권력이 부패를 문제 삼아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적반하장식 정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 능숙한 집단과 의로움을 추구하며 사는 집단이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를 어느 정권이 추구하고 있었으며, 어느 정권이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국민들은 지난 15개월 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의 수준을 넘어 붕괴 직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보며 국민들이 쏟아내는 끝없는 비통함은 고인에 대한 애도에 한정되지 않고, 붕괴 직전에 있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책임,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한 주권자로서의 고통스러운 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권위주의적 치안통치를 강화해 왔다. 정권은 오만했고, 사법부는 '법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키면서 노골적으로 '정권의 안위'에만 집착했다. 입법부를 존중할 의지가 없었던 행정부의 돌격대식 정치행태는 수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당 내에서조차 쇄신논의가 들끓고 있으며,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행정부의 독선적인 일방주의는 민주주의의 대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정권을 감시하고 민의를 표출하는 통로인 언로(言路)를 장악하겠다는 정권의 압력은 KBS, MBC, YTN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정권친화적인 인사로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언론 본연의 민주적 비판기능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언론인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직접 민주주의의 유력한 통로인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탄압도 노골화되어 네티즌에 대한 대대적인 구속수사가 진행되는 한편, 여론의 강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종 언론악법을 통과시키고자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는 극단적으로 억압되고 있다. 지난 해 촛불정국에 등장했던 이른바 '명박산성'으로 명명된 컨테이너 박스들, 이번 조문정국에서 서울시청 광장을 빼곡하게 봉쇄한 '차벽' 등의 상징적 의미는 정권의 '광장공포증'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권 스스로 국민을 이끌어 갈 자신감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닫고 있으면 민주적 리더십을 형성할 수 없다. 경찰과 검찰의 물리적 폭력, 국세청을 동원한 경제적 보복은 정치적 정당성의 기반을 흔들게 된다. 공권력이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버팀목으로 기능하지 않고, 투기재벌의 이익을 지켜주는 일에만 몰두해 있는 동안 공권력은 '국가폭력'으로 전화되어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는데도 서민들의 통곡에 귀를 닫고 있는 정부가 이명박 정부 아닌가.

더구나 이 정부 들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이정표가 되어 온 6.15 선언과 10.4 선언 등 남북 간의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이 사실상 폐기되고, 냉전적 대북정책이 강화됨으로써 남북관계가 심각한 대립과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미숙한 대북정책이 초래한 '안보위기'에 대한 책임을 자성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감을 부추기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국민의 안위보다는 '정권의 안위'에 이 정부의 관심이 더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민족은 영원하다. 국민들은 5년의 제한된 기간 동안만 정권을 맡긴 것이다. 제한된 시기 동안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라고 위임한 것이지 특정 세력만을 위한 대변자가 되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요청하였지 눈물과 통곡과 원한을 심는 정치를 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끝없는 추모 행렬과 하염없는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고,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국민의 눈물에 대답하길 바라며 우리 작가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치보복의 결과로 발생한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여야 한다.

1. 특별검사제를 발의해 이번 사태의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엄정히 처벌하여야 한다.

1. 헌법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찰과 경찰을 포함한 공권력에 의한 치안통치를 중단해야 한다.

1. 언론과 인터넷을 포함한 공론장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고 각종 미디어 관련 악법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1.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남북 간 합의사항이자 이정표인 6.15 및 10.4 선언을 계승하고, 냉전적 대북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 지난 정부의 국정운영 성과를 모조리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편협한 정치, 보복정치와 같은 국정운영 방식을 철회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 한다.


2009. 6. 9 (사) 한국작가회의 시국선언 서명자 일동

 

 

 서명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행동하는 양심이고 싶은데,  가끔, 저의 비겁함에 부끄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