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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박소란

shiwoo jang 2020. 3. 8. 07:36

없다


                      박소란



우체통을 들여다 본다

길들여지지 못한 짐승의 아가리처럼 깊고 어두운 곳

어떻게 알았을까 당신은

이곳에 주소가 없다는 것을


집이 없다는 것을

상기된 표정으로 커튼을 열 젖히는 얼굴이

발갛게 피어나는 식탁이 풋잠을 머금은 나릿한 하품이 없다는 것을

아침은 이미 이곳으로 오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밤의 우체통을 들여다 본다

주린 속 깊숙이 손을 찔러본다

짐승은 파르르 떠는

또다른 짐승의 야윈 손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짓궂은 장난같이 차가운

피, 피가 흐르고


당신은 어떻게 알았을까

울음이 없다는 것을

컹컹 짖는 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오랜 침묵의 우체부인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알았을까



                                  -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오랜 침묵의 우체부인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까

나는 집도 주소도 없는, 울음도 우는 법도 모르는 존재라는 걸...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가요?